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기록

옹이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 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는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도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이 시를 읽으면 사람들이 왜 류시화 시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언어의 밀반죽을 부리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런데 그것 이상은 아니다.

 

옹이는 상처가 피워낸 꽃이다. 옹이는 그래서 흉터이다.

상처를 끊임없이 소추하고 환기시키는 증거. 그건 인멸될 수도 망각될 수도 없다.

그것은 현존이며 그래서 인정하고 직면하고 살아가야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트라우마는 갖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디 개인의 자유의지로 되는 것인가.

상처가 나고 흉터가 지고 여리디 여리었던 살이 옹이처럼 굳어져 가는 순간 겉은 단단해져도 속은 여려지고 부드러워진다. 상처가 터지고 균열이 생겨야 존재는 더 많은 것을 품어안 을 수 있는 내적 공간이 생긴다.

 

그 여림은 다른 존재와의 공명을 가능케 한다.

어제 어떤 분을 만나 유리인간, 투명인간이 되고서 많이 자유로와졌다고 말했더니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하셨다. 스스로 단단하다 자부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깨어지기 쉬운 존재이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늘 환한 조명이 자기를 장명등처럼 밝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이다. 일반적인 성공의 궤적, 인생의 탄탄대로에서 벗어나 적막한 산길, 거친 들길, 황막한 사막과 만날 때 내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발견하고 하염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열린다. 이제 비로소 자신의 스텝을 밟고 자기 몸의 에너지를 따라 춤출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거친 모래사장이나 몽돌밭 위라 해도 상관 없으리


'일상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WILD(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0) 2013.01.01
밥말리 헤드폰  (0) 2012.10.18
우리집 식탁의 모습  (0) 2011.10.20
2011.6.20일 일기  (0) 2011.06.19
디자인을 생각해 보다  (0) 201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