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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프로젝트/도전 30편 시모음

(30)
[14] 여승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이 머리 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13]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즈런한 계절이 피어선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12] 국화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1] 문둥이 - 서정주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10]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
[09] 쉽게 씌여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빌어 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詩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라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握手)[출처] 쉽게 씌여진 시(詩) ......... 윤동주|작성자 ..
[08]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07] 유리창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닥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패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출처] 정지용-유리창|작성자 q_q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