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가운데 일반인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극히 일부다. 20세기 이후인 경우는 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인데, 대학이나 국가 연구소에 적을 두면서 순수학문을 연구한 경우가 많다. 응용연구를 주로 하는 기업체 연구원이 이름이 알려지는 건 무척 예외적인 경우다.
미국 회사 3M에서 근무한 아트 프라이(Art Fry)가 바로 이런 예외가 아닐까. 프라이는 현대인들 대다수가 늘 옆에 두고 쓰고 있는 ‘포스트잇(post-it notes)’의 발명자다. 빛을 내는 전구가 그려져 있는 포스트잇을 이마에 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세상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포스트잇이 없다고 해서 우리 삶이 달랐을 거라는 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료의 발견에서 영감 얻어
아트 프라이의 본명은 아서(Arthur) 프라이로 1931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이오아의 소읍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어서 자투리 목재로 멋진 썰매를 만들기도 했다. 교실 하나짜리 시골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를 잘 했던 그는 1950년 미네소타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1953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3M에 입사해 신제품개발부에서 줄곧 근무했다.
1974년 어느 날, 프라이는 동료 연구원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의 세미나를 듣게 됐다.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던 실버는 1968년 특이한 물성을 보이는 접착제를 얻었다. 그는 감압(感壓)식접착제, 즉 물체에 붙여서 꾹 눌러주면 달라붙는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접착제를 작은 구 형태로 만들어 물체와 닿는 면을 줄이자 물체에 달라붙은 뒤 쉽게 떨어질 뿐 아니라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던 것. 또 몇 번씩 다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 뒤 기회가 될 때마다 실버는 자신의 접착제를 연구소에서 소개했지만 접착력이 떨어지는 접착제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실버의 발표를 듣고 있던 프라이의 머릿속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종이 한쪽에 이 접착제를 발라 책갈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는데 그날 불러야 할 노래의 악보가 있는 페이지에 종이를 끼워 표시하곤 했다. 그런데 책을 넘기다보면 다른 부분의 페이지 사이도 벌어지면서 끼워둔 종이가 떨어져 번번이 고생했던 것. 예상대로 그가 만든 포스트잇 원형은 이런 불편함을 없앴다.
다음날 출근한 프라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부에 보고했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경영진도 결국 개발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해 5년간의 연구 끝에 1980년 포스트잇이 시장에 선보였다.
출시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포스트잇은 사무실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품목이 돼버렸고 스카치테이프와 함께 3M을 상징하는 제품이 됐다. 물론 아트 프라이 역시 3M을 상징하는 연구자로 역사에 남았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만들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만들어 주는 데서 늘 만족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이런 물건들이 쓰인다면, 내 몸의 일부가 영원히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포스트잇의 공동발명자 아트 프라이. “나는 아이디어가 나를 때리면 몸까지 충격을 느낀다. 이런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당신은 그걸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미국 회사 3M에서 근무한 아트 프라이(Art Fry)가 바로 이런 예외가 아닐까. 프라이는 현대인들 대다수가 늘 옆에 두고 쓰고 있는 ‘포스트잇(post-it notes)’의 발명자다. 빛을 내는 전구가 그려져 있는 포스트잇을 이마에 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세상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포스트잇이 없다고 해서 우리 삶이 달랐을 거라는 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료의 발견에서 영감 얻어
아트 프라이의 본명은 아서(Arthur) 프라이로 1931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이오아의 소읍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어서 자투리 목재로 멋진 썰매를 만들기도 했다. 교실 하나짜리 시골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를 잘 했던 그는 1950년 미네소타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1953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3M에 입사해 신제품개발부에서 줄곧 근무했다.
1974년 어느 날, 프라이는 동료 연구원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의 세미나를 듣게 됐다.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던 실버는 1968년 특이한 물성을 보이는 접착제를 얻었다. 그는 감압(感壓)식접착제, 즉 물체에 붙여서 꾹 눌러주면 달라붙는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접착제를 작은 구 형태로 만들어 물체와 닿는 면을 줄이자 물체에 달라붙은 뒤 쉽게 떨어질 뿐 아니라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던 것. 또 몇 번씩 다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 뒤 기회가 될 때마다 실버는 자신의 접착제를 연구소에서 소개했지만 접착력이 떨어지는 접착제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실버의 발표를 듣고 있던 프라이의 머릿속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종이 한쪽에 이 접착제를 발라 책갈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는데 그날 불러야 할 노래의 악보가 있는 페이지에 종이를 끼워 표시하곤 했다. 그런데 책을 넘기다보면 다른 부분의 페이지 사이도 벌어지면서 끼워둔 종이가 떨어져 번번이 고생했던 것. 예상대로 그가 만든 포스트잇 원형은 이런 불편함을 없앴다.
다음날 출근한 프라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부에 보고했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경영진도 결국 개발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해 5년간의 연구 끝에 1980년 포스트잇이 시장에 선보였다.
출시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포스트잇은 사무실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품목이 돼버렸고 스카치테이프와 함께 3M을 상징하는 제품이 됐다. 물론 아트 프라이 역시 3M을 상징하는 연구자로 역사에 남았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만들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만들어 주는 데서 늘 만족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이런 물건들이 쓰인다면, 내 몸의 일부가 영원히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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